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⓵
일요일 오후
하필이면 일요일이었다. 무척 더운 날씨에 2시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남편이 안보였다 ‘ 이 땡볕에 산책을 갔나? 썬크림이나 바르고 갔나 몰라’ 생각하며 외출했는데..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딸이 전화해서 아빠가 이상하다고 울먹였다. “어떻게 이상한데? 잘 설명해봐” “몰라, 근데 아무튼 이상해. 대답도 잘 안하고 입가에 침도 흘리고 눈에 초점도 없는 것 같아. 무서워 엄마...” 증상을 들어보니 뇌졸중 같아서 화들짝 놀란 나는 빨리 119 불러 병원가라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남편은 의식은 있으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에 초점이 풀린 것 같고 어딘가 무기력해보였다. 다행히 걷기는 가능해서 출동한 119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동. 앰뷸런스 안에서 구급대원이 하는 질문에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지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여기가 어딘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응급실에서의 시간은 흘러가고
도착해서 서둘러 CT 촬영하고 주사라인 확보하고 소변줄을 끼우는 등 의료진이 분주하게 준비를 했다. 좌측 중대뇌동맥(MCA)이 막힌 뇌경색임이 확인되고 혈전용해주사를 쓸 것이라고 했다. 6시가 다 돼서 4시간30분을 이미 초과한 시간이라 마음이 너무 초조하고 불안했다. 인지가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남편은 소변줄로 요도가 자극돼서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소리치고 흥분해서 혈압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약을 빨리 주입해야 하는데 혈압이 올라가니 자꾸만 지연되고 혈압강하제 주사를 쓰고도 얼마를 더 기다려야 했다.
몸에는 마비가 안오고 언어에만 문제가 생긴 상황으로,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글씨를 써서 보여줘도 협조가 안되어 애를 먹었다. 아픈 사람이 지금 이까짓 소변에 저렇게 집착할게 뭐람? 하는 생각에 속상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고 약으로 해결이 안되어 결국 전문의가 출근하여 혈전제거술 준비에 들어갔다.
기다림-가족의 시간
남편은 이미 8시가 지나서 수술실에 들어갔고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놀란 아들 딸과 만나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50대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이 왠 말이야... 아빠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중증일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에 아이들이 자책하는 모습이 더 가슴 아팠다. 그렇지... 젊은 사람들이 이런 질병에 대한 기초 정보가 부족할 수 밖에... 병원에서 일하는 내가 그 시간에 집에만 있었더라도 바로 발견해서 골든타임을 지켰을텐데 하는 생각에 나도 괴롭고 자책감이 밀려왔다. 자꾸만 눈물이 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시댁에 전화해서 알렸더니 놀란 아주버님 내외가 뒤늦게 병원으로 왔지만 중환자실 면회가 제한되어 그냥 돌아가야 했다.
중환자실의 트라우마
다행히 혈전 제거가 성공적으로 되었다는 의사 설명이 있었고 11시가 넘어 중환자실 면회가 가능했는데 남편은 안전을 위해 사지를 결박당한 상태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너무 처참한 몰골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도 화장실에 가겠다고 난리치고 소변줄을 잡아빼서 소변을 바닥에 다 엎지르는 등 출혈후 지혈을 위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 움직이니까 안전을 위해 어쩔수 없었다. 우리를 본 남편은 힘들게 같은 단어만 되풀이했다. “이거.. 이거.. 응? 이거...나 집에 가야 돼” 사람을 알아보고 이름도 불렀지만 의사전달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아닌 울부짖는 짐승 같이 느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이제 정상인으로 살아가긴 힘들겠지... 저런 장애를 안고 어떻게게... 사회활동도 직장생활도 모두 올 스톱일테지. 아.. 난 몰라. 어떡해. 절망감이 끝도 없이 밀려와 내 등짝을 후려치고 있었다.
긍정마인드? 그게 가능해?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 우리는 찬밥과 냉장고 반찬 몇 개 꺼내 힘겨웠던 마음과 허기를 채웠다. 서로 할 말을 잃고 침울했지만 이럴 때 혼자가 아니라 애들이 곁에 같이 있다는게 그리도 고맙고 감사했다. 지옥같은 일요일 오후와 저녁시간을 그렇게 보냈고 내일부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사람이 있어 더 늦기전에 발견한 게 다행이고 혈전제거술도 성공했으니 감사하고 그렇게 마음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잠을 청했다.
이제부터 우린 뇌졸중 환자의 가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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