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⓷
예나 지금이나 나는
언제부턴가 나는 친정 식구들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가 되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평탄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혼과 육아를 겪는 과정에서 삶의 굴곡이 심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한 딸의 처지를 부모님은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나와 언니, 여동생 이렇게 세 자매는 항상 가깝게 지내며 남자 형제들은 숟가락만 얹으면 될 정도로 가족의 모든 대소사를 의논해 결정했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고 보살피며 지냈다.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던 그 시간은 친정 식구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구보다 가까운 언니가 가족 해외 여행중이라 비밀에 부치느라 애먹었고 귀국해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내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걱정해주고 도움을 주던 내 자매들을 만나 얘기하고 울고 다시 대책을 고민하고 하면서 혼자만의 고통의 늪을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와 바로 옆집에 사시던 친정 엄마는 딸에게 부담이 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겠다는 결정을 내리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여기저기 아프고 기력 없는 노인 혼자 자식들도 곁에 없이 사신다는 건 너무 큰 모험이었지만 그렇게 하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나도 불쌍했고 그냥 이 모든 상황에 눈물이 났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뇌졸중 집중치료실의 기록
중환자실에서 4일째 되던 날, 일반병실로 이동할 거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물건들 챙겨서 병원에 갔다. 안내된 곳은 일반병실 옆에 있는 “뇌졸중 집중치료실”. 환자 상태에 따라 바로 일반병실로 가기도 하고 이곳을 거쳐 가기도 한다고 했다. 4인실 집중치료실로 이동한 후 남편은 여전히 소변에 대한 강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장실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소변줄 유지해야 한다고 간호사들이 열심히 설득해도 이해력과 인지가 떨어진 상태라 몇 분 간격으로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어린아이라면 어떻게 해볼 텐데 덩치 큰 남자 어른이 힘으로 하겠다고 덤비는데 말려야 하는 상황이 어이없고도 힘들었다.
몇 개의 단어만 내뱉던 중환자실에서와는 달리 이제는 맥락 없는 말이지만 횡설수설 얘기도 하고 상대의 말은 여전히 못 알아듣지만 상황과 눈치를 살펴 가며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과 현재 장소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 아예 대답을 못했고 지시어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데 말을 잘 못하니 포기하는 눈치였다. 휴대폰을 달라고 해서 건네주니 사용하긴 해도 오락가락 아직은 미숙한 상태였다.
다음날 주치의 지시로 소변줄 제거하고 나니 한숨 돌리게 되었다. 다행히 몸에 마비는 안 온 것 같아서 보행에는 지장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이 복도를 걸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글을 읽어보게 했더니 마치 외계어 같이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한 글자도 온전히 읽어내지 못했다. 아들 딸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데 “애들은 어떻게 된거야? 어제, 그제.. 그 어떤게 뭐 그거를 어떻게 하는 건지 그런 건지 어떤지 잘 모르겠어” 하는 식으로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용을 이해해보려고 질문을 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귀가 안 들리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라도 점점 나아진다는 신호니까 기다려봐야지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금단증상이 나타나면서 담배 피우러 가게 내버려 두라고 짜증내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낮이나 밤이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감시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밤에 내가 자는 것 같으면 소리없이 병실 밖으로 나가 배회하는 것을 본 간호사가 나를 깨우고 환자 혼자 두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한 시간도 편히 잘 수 없었고 뒤쫓아 가면 따라온다고 화내고 담배 한 대 피운다는데 왜 안되냐며 흥분해서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참았던 나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소리소리 질렀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개고생을 하는데 니가 이럴수 있어? 누군 니가 좋아서 이렇게 쫓아다니는 줄 알아? 이 나쁜 x”. 복도를 지나가던 간병인과 보호자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에고, 저렇게 젊은 나이에.. 쯧” “간병이 원래 힘들지.. 다 그래요” 달고 있던 수액이고 뭐고 다 빼서 던지고 그냥 죽자고 하고 싶었다. 두고 두고 자식들 힘들게 하지 말고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에서 못 빠져 나올 거라면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감정이 격해지니 모진 마음만 먹게 되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하는 재활병원
상급병원은 입원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 이후에는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하니 시동생이 알아봐 준 재활병원으로 대기 신청을 했다. 병원내 진료협력센터에 가서 요청하면 희망하는 병원 몇 군데로 소견서랑 필요한 서류를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재활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연락을 주면 통화해서 원하는 병원으로 입원을 결정하면 된다. 우리는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재활병원을 알아봤고 일반병실로 가자마자 필요한 서류를 요청했는데 담당 주치의 오더가 있어야 소견서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야 타 병원에 의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재활병원은 기본 2~3주 대기가 있다고 해서 마음은 급한데 이 부분은 빨리 진행이 되지 않아 불안하고 답답했다. 결국에는 퇴원 시점에 우리가 원하는 1순위 재활병원에 자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먼저 3순위 재활병원에 입원했고 12일 만에 다시 1순위 재활병원으로 옮기게 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상급병원의 스케줄대로 진행되는 이런 부분이 보완되어야 할 것 같고 안되면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에너지 소모뿐만 아니라 재활치료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이런 비효율은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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