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⓶
곁을 지키는 가족들
아침에 눈떠보니 대학생 아들은 일찌감치 알바하러 나가서 없고 딸은 일부러 연차를 내서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한 번 2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환자 보호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면회시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어제 허탕을 치고 돌아간 아주버님과 함께 오늘 저녁 면회를 가기로 했다. 시동생은 발빠르게 이것저것 알아봐 주었고 자신이 잘 아는 의사한테 형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봐 주겠다며 응급실 초진차트며 영상CD 등을 요청해 가져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뇌손상 부위가 적고 추가 뇌출혈이 발견되지 않아 재활치료를 통해 회복 노력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소견이었다. 재활병원 리스트를 검색하고 집과 가까운 병원을 추천해주며 대기기간이 있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경황이 없어 무엇부터 해야 될지 막막하던 내겐 참 고마운 일이었다. 소식을 접하고 놀라 기겁한 내 여동생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뭐든지 할테니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냥 같이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 회사와 사람들
출근 시간이 되어 남편 회사에 전화해서 입원 사실을 알렸다. 많이 놀라는 기색이 전화기 너머에서 느껴졌다. 영업팀장과 통화하며 회사 업무가 과중했는지,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몇 마디 여쭤보았다. 평상시와 큰 차이가 없었다며 남편의 상태를 많이 걱정해주었다. 오후에 회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의 현재 상태를 꼼꼼하게 물어보며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하며 병가 처리해 둘테니 걱정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최대 6개월까지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일반병실 입원 기간중에는 대표와 함께 관리팀장, 영업팀장까지 면회를 와서 남편을 안심시켜주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나이 들어 이직한 회사가 변변찮은가 미심쩍어했었는데 꽤 괜찮은 회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믿음이 갔다. 다행이다,
중환자실의 동상이몽
병원 3층에서 아주버님을 만나 중환자실 면회를 했다. 보호자 1명씩 총 20분이니까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10분. 환자 상태를 물으니 막힌 혈관은 잘 뚫렸고 열이 나서 얼음팩 대고 있는 상태로 아직까지는 특이사항 없이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은 여전히 대화상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제.. 그러니까.. 내가.. 제발.. 제발.. 아.. 이게.. 이게..” 이런 내용의 반복이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단어를 사용하니까 위안을 삼아야 하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사지가 묶여있어 매우 고통스러운 듯 보였고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저 불쌍한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눈물이 주체없이 흘러내렸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어제부터 끊임없이 울려댔던 남편 휴대폰 확인을 위해 지문인식을 시도했으나 손가락에 힘을 주지 못해서인지 몇 번 실패 후 잠겨버렸다.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하면 저 휴대전화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는 새로운 숙제가 되었다.
면회를 끝낸 아주버님은 동생이 자기를 알아보고 몇 마디 말도 했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를 진단한 나와는 달리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던 까닭에 더 희망적이라 여긴 것이겠지. 10년도 훨씬 전 시어머니께서 욕실에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이틀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다가 깨어나셨고 처음엔 한마디 말도 못했는데 어눌하게나마 입이 트였고 현재도 알아듣기 힘들긴 하지만 대화는 어찌어찌 가능한 상태이시니까.
시어머니는 당뇨, 남편은 고혈압이 있다. 병에 대한 경각심으로 늘 깨어있고 스스로 관리해야 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중환자실에 오지 않으려면.
독백 후회 자책
상대가 누구든 대화만 시작하면 눈물부터 났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아직은 이성의 힘으로 대처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걸까? 왜 뇌졸중이 왔을까?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며 부쩍 술과 담배가 늘었던 것은 알고 있다. 담배는 하루 한 갑 그 이상인 것 같았고 술은 하루 걸러 혹은 연속으로 일주일에 4~5번씩 마셨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몇 주전에는 혈압약이 떨어져서 이틀 동안 약을 못먹었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을까? 왜 난 확인을 안했지? 더운날 무리해서 운동하고 돌아와 담배를 피웠던게 방아쇠를 당긴게 아니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켰고 그 뒤엔 어김없이 자책감이 따라왔다. 그날 내가 나가지만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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