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⓸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
나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걱정한 아들이 보호자 교대를 해주어서 주말 동안 집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계속 담배 때문에 아들을 힘들게 했고 말이 늘면서 중환자실의 트라우마를 얘기하고 또 얘기하면서 사람을 귀찮게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지를 묶어두고 밥도 물고 안주고 자신을 굶겼으며 일반병실로 올 때까지 의료진이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시술후 금식과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력과 인지가 떨어진 사람에겐 납득이 안되는 문제였다.
남편 친구가 주말에 면회를 다녀갔는데 그때 대화가 잘 안돼서 “뇌경색”이라고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더니 이해했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자신이 병원에 왜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것이다. 발음이 잘 안돼서 자꾸 연습하고 연습해도 언어장애가 온 뇌졸중 환자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단어였다. “뇌졸중” 그리고 “뇌경색”.
남편은 뇌졸중에서도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 환자로 좌반구 손상으로 인한 베르니케 실어증을 후유증으로 안게 되었다. 듣고 이해하는 언어수용 기능이 고장났으나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왜냐면 말을 유창하게 하니까. 하지만 의미 전달이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잠깐 얘기를 나누거나 전화 통화를 했던 사람들은 멀쩡한데? 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유심히 지켜 본 나는 그럴수록 더 마음이 불안했다.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환자 본인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통제도 안되고 협조도 안되는 고충이 따랐으니까.
기억
듣고 이해하는 기능이 안되는 것에 비해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기능은 상대적으로 나아졌기에 이해 못하는 눈치면 바로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다. 아예 노트 한 권을 가져와서 펜으로 적고 보여주고 하니 의사소통이 훨씬 수월해졌다. 남편은 신기하게도 발병했던 날부터 있었던 일을 나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점심때쯤 한강변으로 산책을 갔고 집에 돌아올 때 무척 힘이 들었다는 것.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지 못해 창문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것. 애들이 뭐라 하면서 얘기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는 것. 중환자실에 누가 면회 왔었고 간호사는 무엇을 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누워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의식을 잃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억은 살아있나 보다. 때론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나을수 있다. 중환자실의 트라우마 같은 거.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지워주고 싶다.
언어치료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운동치료,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인지치료를 시간표대로 진행하면서 내게도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고 부족한 잠도 보충할 수 있었다. 그토록 밉던 뒷통수가 가끔 안쓰럽게 느껴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본격적으로 언어치료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틈틈이 휴대전화로 사물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름 말하기, 글을 보며 소리 내어서 읽고 필사하기 등을 하게 했다. 잘 안된다고 짜증내며 좌절해도 어제보다 나아졌다며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리고 언어치료를 받고 난 후 자신의 상태가 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남편이 “내가 그.. 그 뭐지? 개구리.. 어.. 그 개구리 있잖아 그게 뭐지? 그 이름 몰라” 라며 당혹스러워 하길래 “청개구리?” 했더니 맞다며 자신이 그 쉬운 걸 대답하지 못했다며 어이없어 했다.
‘아, 그러세요? 그동안 한참이나 어이없었던 사람 여기 앞에 있어요’ 뱉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니 혼자서만 중얼거렸다.
이 나이에 다시 육아?
매일같이 새로운 검사에 검사가 있었다. 왜 그런 검사를 계속 하는지 물으니 뇌졸중 원인을 찾기 위한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동맥 초음파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고 관상동맥조영술도 했다. 연결돼 있는 혈관중 어디에 좁아진 부분이나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상동맥조영술은 손목 부위의 동맥을 통해서 심장혈관 상태를 보는 검사로, 끝난 후 동맥혈관 지혈을 위해 상당한 압박을 가한 상태로 붕대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손바닥에 피가 잘 안 통하는 불편한 상태로 5~6시간을 지내야 하는데, 계속 불편하다며 신경질 냈다. 압박받으면 동맥혈이 솟구쳐 출혈의 위험이 있으니 손목을 구부려 몸을 지탱하면 안 된다니까 왜 그래야 하냐며 말을 안 들었다.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고 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솟구쳐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내 인내심 한계를 시험하는 거야 뭐야? 때려서 말을 듣게 할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니 응? 너 미운 다섯 살인 거니? 나 다시 육아중인거야?
이해도와 인지도가 떨어지니 그냥 어린애나 다름 없어졌다. 그래. 뇌가 손상됐잖아. 그래서 환자잖아. 어린애가 돼버린 환자. 생각하니 다시 또 기가 막혔다. 니코틴 중독으로 호시탐탐 편의점 가려고 엿보는 어린애가 어디 있니?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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