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병일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by 선한 하트 2025. 7. 26.

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⓺

 

재활병원 리스트

우리의 재활병원 리스트에서 1순위는 서울재활병원 2순위 일산중심재활병원 3순위는 일산복음미래병원이었다. 회복기 재활병원을 우선 순위로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의 기준으로 정했다. 퇴원시점에서 서울재활병원은 3주 이상 대기라고 해서 일단 대기명단에 올려놓고 일산중심재활병원에 마침 자리가 나서 이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의 노트북 사건으로 입원이 무산되자 머릿속은 하얗고 뇌가 정지된 느낌에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알아봤던 병원들은 거의 평일 입원만 가능했기에 금요일 5시가 지난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병원을 정하기전 5개 병원을 후보에 두고 전화상담을 했었는데 그 중 홀리병원이 토요일 입퇴원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다행히 한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회복기 재활병원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런 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입원 예약하고 다음날 오전중으로 가겠다고 했다.

 

급성기 치료후 재활병원을 결정할 때 일단 후보를 충분히 확보하고 소견서를 다 보낸 다음 전화상담을 다 해두어야 한다. 만약의 변수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여러 대안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내가 그때 홀리병원 상담을 미리 해두었기에 그렇게라도 급한 불을 껐다고 생각한다. 만약 3박을 집에서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모두 극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재활병원 입원 그리고 기도

9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퇴원환자가 나가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해서 한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원무과와 재활치료실이 있는 5층을 둘러보니 노인 환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았다. 남편처럼 젊고 외관상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정적으로 많이 위축될 것 같았다.

 

의사 진료를 받고 결과에 따라 재활치료 시간표가 나왔다. 언어치료와 인지치료가 핵심적으로 중요한데 일단은 주 2회씩 해본다고 했다. 운동치료, 작업치료, 물리치료도 병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언어치료와 인지치료는 비급여 적용이라고 했다. 어쩔수 없었다. 회복기 재활병원 입원을 놓쳤기 때문에. 지금 돈이 문제랴. 재활치료의 골든타임인데 닥치는 대로 뭐든 해봐야지.

 

접수하고 설명 듣고 병실에 가서 물건들 정리하는데 요양보호사 한 분이 도와주셨다. 남편 병실 담당이셨다. 이곳은 통합간호간병이 적용되는 병원으로 요양보호사 한 명이 4인실 2개를 담당하는 시스템이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니 글로 적어주면 좀 더 이해를 한다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간호사실에 들러 남편이 담배 충동이 있으니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게 통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만일을 위해 휴대폰 월렛의 카드를 다 삭제해두긴 했다. 현금이든 뭐든 결제수단이 있으면 담배를 사러 갈 위험이 크니까.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남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배웅하는데 그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저 머릿속은 지금 얼마나 혼돈일까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일렁였다. 이 모든 시간들이 나중에 추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의 힘든 시간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받침돌이 되어 주기를.. 우리가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를.. 남편이 좌절하지 않고 치료를 적극 받아들이며 한걸음씩 나아가기를..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의 든든한 기둥

재활병원 입원이라는 큰 숙제를 마친 나와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집에 돌아왔다. 사실 남편은 집에서 통원 치료 할 수 있다면서 입원에 동의하지 않았다. 움직이고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어 보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입원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집에서는 통제가 안된다. 통원 치료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장애가 되어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렵다 라고 판단했다.

 

매일 같이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해력과 인지가 떨어지니 이런 과정도 몇 배의 어려움이 따랐다. 간신히 동의를 구해서 차질없이 재활치료 받을 거라 예상했는데 갑자기 터진 노트북 사건으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무사히 입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허기지고 지친 우리는 기름진 튀김과 떡볶이 등의 분식을 잔뜩 사들고 와 나누어 먹으며 길고도 길었던 어제와 오늘의 시간을 먼지 털 듯 털어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보자고 약속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은 월급의 3분의 2를 내게 이체하며 당분간 아빠의 벌이가 없으니 자신이 가장의 몫을 분담하겠다고 했다. 대학생 아들은 용돈벌이로 하는 알바에서 최소한을 제외한 돈을 생활비에 보태겠다며 보냈다. 자신은 있으면 있는 대로 소비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내는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했다. 나도 이제 곧 취업할 거라 했더니 엄마에겐 아직 휴식이 필요하다며 자기들이 있으니까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만류했다. 무엇보다 나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지니 이젠 내가 보호받는 처지가 되었구나 싶었다. 진짜로 다 컸구나, 내 새끼들이... “어무니, 이젠 우리 어깨에 기대셔도 됩니다.”라는 말에 눈물이 핑.

 

'간병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자의 시간, 가족의 시간  (6) 2025.07.28
소통이 문제입니다  (1) 2025.07.25
잃어버린 것 그리고 남아있는 것  (2) 2025.07.24
약자  (7) 2025.07.23
각자의 자리  (2) 2025.07.22
설마.. 뇌졸중이라고?  (1)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