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와의 시간 - ⓹
소외
차츰 병실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재활치료 받느라 바빠지면서 담배로 인한 성가심도 많이 줄어들었다. ‘술과 담배를 시작하면 다시 또 뇌경색이 올 수 있어. 앞으로 절대 하면 안돼. 알았지?’ 노트에 적어주며 표정을 살피고 매일 같이 다짐을 받았다. 기억력이 하루 지나면 다시 리셋 되는지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회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로는 식사 후 아무것도 안하고 주치의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예정 시간 한참 전부터 복도에 나가 서성이며 기다리고는 했다. 주치의는 남편에게 “어떠세요?” 묻고 대답이 없으니 보호자인 나와 대화했으며 나는 궁금한 게 많으니 계속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곤 했다. 그동안 남편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이 벌겋게 되어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주치의가 가고 나면 화난 표정으로 왜 나한테는 말을 안 걸고 둘이서만 얘기하느냐? 며 불만을 터트렸다. 환자인 자신에 관한 대화 내용을 당사자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긴 했다. 화난 표정으로 있다가 다시 체념하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길고 긴 힘든 시간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들이 계속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음 외래 오실때는 말씀 엄청 잘 하실걸요? 다들 좋아지십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인차가 있어서 얼마나 걸린다 이렇게는 말씀 못 드리구요. 대신 가족들이 말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 상호작용이 많을수록 더 좋아질 겁니다. 비슷한 상황이더라도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회복이 더딜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곁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담당 주치의 소견은 한결같았다. 언어 자극에 계속 노출되도록 도와주라는 것. 마치 어린애가 입을 열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하는 것처럼.
몽글몽글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티눈 같은 작은 상처 하나에도 걱정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정작 자신은 전혀 돌보지 않는. 심지가 약한 건지 술이나 담배에 대한 의존성이 컸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술과 담배였다. 그렇게 몸이 병들어가도록 방치한데다 더운 날 운동하러 나갔던 것이 물에 가라앉는 돌멩이 하나 얹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검사에서 다른 원인이 딱히 없었으니까.
평상시에도 장난처럼 경고했었다. 그렇게 관리 안 하다가 나중에 가족들한테 간 떼어달라, 콩팥 떼어달라 하면 죽을 줄 알라고.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말라고.
차라리 한 번 수술하고 끝나는 병이면 그래도 낫지. 이게 뭐냐고. 후유증을 안고 언제 회복될지도 모르는 이런 기약 없는 사고를 치다니. 남편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지 지은 죄가 뭔지도 모른 체 병수발하는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이런 옆지기라니... 너는 당장 이혼감이다. 정신 돌아오고 멀쩡해지면 내가 복수 할테니 그때까지 꼭 회복해라. 그때까지 내가 열심히 치료 도와주고 병원비도 열심히 벌 테니까. 기다려라. 기다려... 이런 악에 받친 심정으로 버티는 날들이 많았다.
병원비를 걱정한 시댁 식구들은 돈을 모아 보내주었고 면회 다녀간 남편 친구들도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차갑게 굳어버린 나를 몽글몽글하게 한 것은 내 친구들과 지인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주며 따뜻한 위로 한마디와 주머니 털어 적잖이 부담되는 금액을 전해왔다.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이어지며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또 눈물이 났다.
밥 잘 챙겨먹어야 된다며 밥 사주겠다고 약속에 다짐에 끝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폭풍 눈물이 났다. 한달음에 병원까지 찾아와 내 안색을 살피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에 뭉쳐있던 분노가 느슨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버티기만 해라. 이 시간도 지나갈 거다. 씩씩해져라. 그들로 인해 내 삶이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노트북이 뭐라고
전 직장 퇴사 후 한 달만 쉬려고 했던 계획은 남편 병간호로 인해 이미 한 달을 넘기며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재활병원에 입원하면 통합 간병을 하면 되고 나는 생활비든 병원비든 벌어야 하니 얼른 취업해야 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마침 지원하고 싶은 곳이 있어서 아들한테 내 노트북 좀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자기 노트북을 갖다 달라는 것이다.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난 것 같았다. 안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이해도 인지도 떨어지니 난감할 뿐이었다.
퇴원 후 예약된 재활병원으로 출발하려는데 노트북 어디 있느냐고, 없으면 집에 들러서 갖고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4시 반까지 도착 안 하면 오늘 입원 못하니까 일단 지금은 병원에 가고 내일 가져다 주겠다고 했지만 왜 안되냐며 화내고 차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어떤 얘기를 해도 노트북에 꽂힌 이 환자한테는 소용없었다.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결국 시간만 흘려보내고 병원에 전화해서 오늘 입원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다음날은 주말이라 입원이 불가능했고 그러면 3일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집에 가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될 게 뻔하니까. 담배 때문에.. 그 망할 놈의 담배. 아악. 진짜 미칠 것 같이 화가 났다. 어린애 같으면 들춰 메고 가버리면 그만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더운 주차장에서 이런 꼴이라니... 초라하고 창피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인해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집으로 오고 아들은 남편을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집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그리고 아들은 밀착 감시하느라 고생했다 한다. 잠 안자고 밤새도록 지키겠다고도 했고 아빠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현관문 앞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나가려는 시도를 제지했다고도 했다. 이런 전쟁이라니... 정말 기가 막혀서 옆에 있으면 등짝 스매싱 몇 대라도 갈겨주고 싶었다. 그 까짓 노트북이 뭐라고 이렇게 까지 일이 커질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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