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스스로는 말을 할 수 있기에, 남편은 계속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추측과 단어를 조합해서 정리해보면, 중환자실에 있을 때 의료진이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과 이로 인한 불신이 가득해 보였다. 물도 밥도 안주고, 사지를 결박해서 꼼짝도 할 수 없이 누워서 시간만 보냈으며 어떤 의료적 처치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운동 삼아 복도와 휴게실을 지나 걸어 다니다가 중환자실을 발견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저기 어딘지 기억난다며 고개를 저어댔다.
수술 이후 금식이었고 움직이지 않도록 취한 안전조치였다는 것을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고, 중환자실의 트라우마에 갇혀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 모든 어려움은 좌뇌 손상에 따른 단기 기억상실과 베르니케 실어증, 인지 저하, 이해력 저하 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는 스스로 말은 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말은 소리만 들을 뿐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를 안게 된다.
간단한 지시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대로 따라 말하는 것도 힘들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상대방이 말할 때, 마치 모르는 외국어를 듣고 있는 것 같이 받아들인다.
중환자실에 면회 갔을 때 어떻게든 상황설명을 하려고 언어와 몸짓으로 시도를 해봤는데 나중에 남편이 말하기를, 내가 자기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소리만 전달이 되었을 뿐 의미는 전혀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다.
겪어보니 베르니케 실어증의 경우 환자가 말을 할 수 있으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게 큰 장애물이었다.
말이 어눌하거나 억양이나 리듬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의미 전달이 안될 뿐, 말을 유창하게 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이런 특징을 충분히 알고 그 수준에 맞추어야 보호자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데, 당시에는 매번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이해시키려 했고 안되면 화가 나는 식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병동 휴게실에 앉아 있을 때면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리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화만 가능해도 간병의 힘겨움이 절반은 줄어들 것 같았다.
▶블로그 글 뇌졸중과 언어장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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